지금이 과연 외교 다변화를 논할 때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에 다녀온 결과를 설명하는 국무회의에서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이를 해결할 힘이 없고 합의를 이끌어 낼 힘도 없다”고 무력감을 토로한 후 “이제 우리도 우리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외교를 다변화하고 외교 역량을 키워나가야겠다고 절실하게 느꼈다”는 각오를 피력했다고 한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어떤 나라도 혼자 힘으로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간 협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익 최우선과 외교 다변화를 강조하는 의미는 또 무엇인가?
상호간 정책을 조정하는 국제협력은 국가간 이익의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노력이지 국익을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외교 다변화는 유엔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있던 냉전시대의 한국이 추구하던 정책이었다. 오늘날의 한국은 유엔, IMF, 세계은행, WTO, OECD, APEC, G20, 아세안+3, 동아시아 정상회의, 아세안 지역안보포럼 등 수많은 다자주의적 국제기구와 회의체에 주요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자주의적 국제활동을 통하여 북미, 서유럽과 일본을 포함하는 서방국가들 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등 비자유주의 국가들이나 아시아·아프리카·남미 개도국들과도 협력을 도모해 나가고 있다.
세계정부가 없이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국제사회에서 협력이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권국가들은 이익에 따라 합종연횡하는 냉혹한 환경 속에서 각자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국제정치의 일반적 현상이다.
각자도생하던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서유럽과 일본경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서방 선진국가들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방 민주주의를 사회불안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안된 마샬플랜이 촉발시킨 변화였다.
1947년 모스크바 외상회의에 참석했던 트루먼 행정부의 조지 마샬 국무장관은 스탈린과의 면담을 통해 소련의 적대적 태도를 확인하고 새로운 적에 대처하기 위해 마샬플랜을 구상했다. 마샬은 서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좁은 의미의 국가이익 경쟁에서 벗어나 공동의 시장과 공동의 이익을 찾도록 독려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경제협력기구(OEEC 오늘날의 OECD)를 조직해서 수원국가들 상호간의 이익갈등을 조정하며 복구계획을 세워서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미국의 공공차관이 서유럽에 공급되면서 서유럽은 전후복구에 성공할 뿐 아니라 서유럽, 북미와 일본을 포괄하는 개방경제권을 형성하여 갔다.
우리도 건국과 전쟁수행 그리고 전후건설을 위해 미국과 유엔의 원조를 받았다.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산업화 역시 서방 국제사회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다시 그곳으로 상품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과 서방 국가들 사이의 협력은 자본주의 시장질서 속에서 저절로 실현된 것이 아니었다. 국가간 관계는 상호의존이 심화될수록 더 많은 갈등에 봉착한다. 무역불균형과 비관세 장벽에 대한 불만, 방위비 분담이나 해외파병 문제 등 수많은 갈등사안들이 등장한다. 국제협력이란 갈등관계에 처한 정부들이 정책조정을 통해서 갈등을 해소해 가는 인위적 행위로만 지속될 수 있다.
한국과 서방국가들은 지난 70년의 노력으로 협력의 관행을 쌓아 왔다. 한국의 역대정부들이 다자외교 무대에서 서방국가들과 쌓아 온 협력의 관행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들과의 협력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대통령이 지난 70년에 걸쳐 협력의 습관을 익혀 온 서방 국가들을 젖혀 두고 불신과 시기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들로부터 한반도 문제 해결의 열쇠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외교 다변화”를 논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비현실적 생각이다. 그런 시행착오는 직전 정부가 첫 3년간 노력하다 포기하고 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외교로 충분하다. ※ 선사연 칼럼 전체 목차와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십시오. → [선사연 칼럼] ※ 선사연칼럼에 대해 개인 의견을 제시하시려면, 1. 위 [선사연칼럼]을 클릭, 선사연 홈페이지로 들어와 칼럼게시판에서 해당 칼럼을 열어 칼럼 하단부의 '댓글' 올리기를 이용(댓글은 400자까지 가능)하시거나, 2. 좀 더 많은 의견을 남기시려면 홈페이지 우측 '선진사회만들기제안-제안하기', 또는 '자유게시판-글쓰기'를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
필자소개 임수환 ( suhwan.lim@gmail.com )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원 국립대만대학교(NTU) 정치학과 교환교수 Journal of East Asian Affairs, 편집장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