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득료애정통고) 失了愛情痛苦(실료애정통고)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듯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 得了愛情痛苦 사랑을 얻음도 고통이요 失了愛情痛苦 사랑을 잃음도 고통이라
피천득(皮千得
1910년 5월 29일 ~ 2007년 5월 25일) / 시인, 수필가이자 대학 교수.
1910년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중국 상하이의 호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
1946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다른 대학에 출강..
1930년 《신동아》에 〈서정별곡〉, 〈파이프〉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
작품으로 시집 《서정시집》, 《금아시문선》, 수필 〈인연〉, 〈은전 한 닢〉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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