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지만 나라는 여전히 혼미하다.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사회면 사회, 어느 하나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아니, 갈수록 더 혼돈이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이러고도 나라가 유지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나라가 어지러운 것은 무엇보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탓이 크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당연히 갖추고 있고 실행해야 하는 보편적 지식과 판단력, 분별력이 실종됐으니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기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다.
5개월 넘도록 비리가 끊이지 않는 ‘조국 사태’는 대한민국에서 상식이 얼마나 초라하게
취급되는지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그중에서도 검찰의 조 전 장관 기소로 비롯된 대리시험 소동은 정말 가관이다.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에 유학 중이던
아들의 오픈북 시험문제를 이메일로 받은 조 전 장관과 정경심 동양대 교수 부부가 사이좋게 나눠서 답안을 작성했고, 아들은 철자 하나 안 고치고
제출해 A학점을 받았다. 그것도 두 번(2016년 11월 1일과 12월 5일)이나.
대리시험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세계
어디에서든 부정행위다.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런 게 논란거리가 된다면 우스꽝스러운 사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바로 이 문제로 사회가
온통 시끄러운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한쪽에서는 나라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다른 쪽에서는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뭉개려
든다. 이렇게 뻔한 결론을 놓고 죽고 살기로 싸운다.
어느 좌파 논객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어떤 자료도 참고할 수 있는 게
오픈북 시험이란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깜찍한 기소’라고 비아냥댔다. 하긴 정 교수가 압수수색에 대비해 컴퓨터 등을 빼돌렸다가 들통 나자
“검찰의 증거 훼손을 막기 위한 증거 보전용”이란 억지논리로 세상을 놀라게 한 장본인이 무슨 말을 못하겠는가. “리포트 쓸 때 옆에서 조언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여당 수석대변인도 한심하긴 매한가지다. 이들은 오픈북을 모르는 무식쟁이가 아니면 도덕성과 수치심을 내팽개친 철면피임에
틀림없다. 조지 워싱턴대가 “자식 시험에 부모가 직접 도움을 줬다면 명백한 부정행위”라고 못 박고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니 국제 망신이 따로
없다.
조 전 장관 부부의 비리가 “당시 학부모들 관행"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사의 발언은 당혹을 넘어 분노와 좌절을 안겨
준다. 그게 30대 초반 소방관이 할 말인가. 대한민국의 어느 부모가 그런 짓을 관행으로 했단 말인가. 본인 부모도 그랬나. 조 전 장관
부부처럼 극히 몰지각한 특권층의 일탈을 대한민국 부모 모두에게 ‘관행’이란 굴레로 뒤집어씌우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런 청년이 하는 정치라면
보나마나다.
조 전 장관에게 적용된 11개 혐의가 “옹색하다”며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나 “단군 이래 가장
민망한 공소장”이라고 폄하한 여당 대변인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오죽하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드디어 청와대마저 미쳤다”고 탄식했겠는가.
요즘 ‘좌파의 양심’으로 떠오른 진 전 교수는 조 전 장관 가족 전체의 파렴치를 상기시키며 “우리 눈에는 과도하게 휘황찬란한데 저분들에게는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지금 대한민국은 몰상식이 난무하는 비이성적 사회다. ‘단군 이래 최악의
위선자’인 조 전 장관 일가를 끼고도는 것부터가 그렇다. 조 전 장관 부부는 돈과 권력을 이용해 온갖 특권을 누리고 반칙을 일삼은 잡범일
뿐이다. 아들 대리시험을 보는 사이에도 정유라 대리과제 제출에 “경악한다”던 가증스러움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런데도 검찰청사 앞에서 ‘조국
수호’ ‘정경심 교수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는 군중은 상식과 담쌓았나 보다.
조국 사태는 좌냐 우냐, 또는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정의냐 불의냐, 상식이냐 몰상식이냐의 문제다. 아무리 잘못해도 자기편이라고 무조건 감싼다면 조폭과 뭐가 다른가. 이런 몰상식을 청와대와 여당이
앞장서서 자행하고 지지자들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게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몰상식이 드러나면 얼른 사과하고 용서를 빌던 이전 정권과 달리 이들은
외려 큰소리치며 뻔뻔이의 극치를 과시하는 게 특징이다. ‘3대 친문(親文) 게이트’ 수사를 강제로 중단시키려고 법에 규정된 검찰총장 의견 청취도
생략한 채 도끼 만행이나 다름없는 검찰 인사를 강행한 법무장관이 ‘항명’ 운운하며 역공을 펴고 정권이 전방위 지원 사격에 나선 것도 그런 사례의
하나일 따름이다.
선진 사회는 우리 모두의 꿈이다. 그리고 상식은 선진 사회냐, 후진 사회냐를 가르는 핵심 가치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에 수출 7위, 세계 7번째 30-50 클럽 회원이고 K-pop, 영화, 스포츠, 한식 등의 한류가 세계를 휩쓸지만 선진국을 자부하지
못하는 것도 몰상식이 횡행해서다.
정권 차원의 몰상식을 끝장내려면 선거에서 본때를 보여야 한다. 그것도 안 되면 민중이 들고일어나야 하나 깬
국민이라야 가능하다.
채 100일도 안 남은 4월 총선이 첫 시험대다.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너나없이 행동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