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斷想 )

올바른 판단의 요건

Big Roots 2011. 12. 17. 16:55

올바른 판단(判斷)의 요건

 

※아래의 글은 저축은행문제를 세상에 알리고져,

2011.1.20. (Yahoo) BLOG에 올리고 한나라당 홈페이지 및 요로에 사본을 올렸던 글입니다. ^^*

 



올바른 판단의 요건(要件)

▶알아야 면장(免墻)을 하지.

 얼마전(2010년도 후반)에  윤증현장관이 T.V.에서 앵커와 인터뷰하는가운데, 관료로서 선진 외국의 관료들과 접하며  일을하다보니 지식의 부족함을 느낀다는 진솔한 고백아닌 고백을 들으며 윤장관의  겸손의 일면을 느끼며 공감한 적이 있다.세상 사람들은 고학력에 고시를 통과하여 정통 경제관료로 성장한 분의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지 모르겠다.
국제무대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기가 맡은 업무만을 이야기 할 수 없다. 업무상 만나드라도 주변의 날씨 부터 시작하여 서로간의 주변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음악 미술등 예술에 관한 것 부터 세계사(문화사,민족사상사,경제사상사등)등등을 넓고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우리와 달리 대학졸업후 대학원에서 전문분야를 수업한 다음에사회의 중견인으로 출발하기에 우리네와 출발부터 차이가 있다.우리는 학업내용이 상대적으로 부실한 대학을 졸업하며 막바로 사회에 진출하였기에 각자의 개인적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야 하는 환경속에서 ,경쟁력이 있는 관료로 성장한 분들의 노고를 치하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그런 과정에서 사회에 진출하여 근무하다보니 개인적으로 노력을 하였다 생각되었지만,  선진국 사람과 접하는 가운데 나의 부족함을 절감한 경험이 있기에 윤장관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올바른 판단은 감성만으로는 있을 수 없다.
올바른 판단은 주변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이성(理性)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 국민들에게 올바른 이성을 길러주려면 첫째로 학교교육이 바로서야 가능하다. 현재의 평준화교육, 제목암기식 주입교육은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도출된다.
분명 사람에 따라서 분야별 지각능력의 차이가 있으며 환경의 차이가 있는데 두부모 자르듯 어찌 인간의 평준화가 가능한가? 학업능력의 저하를 초래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정치적 계산을 멈추고 학교별로 차별화하여 자연스럽게 자기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유도함이 시급하다 생각된다.
두아이를 교육시키는 과정에서 학교에 선생님은 있으나 스승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느낌을 받았다.이 또한 평준화교육의 산물이라 생각된다. 한가지 예를 들면 귀국하여 학교에 근무하는 친구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생각대로  두 아이들을 집 근처(강북)의 중학교에 편입시켰다.어느날 퇴근하여보니 중1에 편입한 아이가 영어 알파벳을노트에 20번을 쓰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너 지금 모하는 거냐?"물으니 숙제하는거란다. 기가막혀 내자보고 내일 담임선생님 뵙고 아이 환경을 설명하고 그 시간에 부족한 국어공부 할 수 있도록 배려를 부탁하라 일렀다. 며칠 후 아이를 통하여 확인하니 의외의 결과가 온 것이다.영어선생님이 교보문고에서 영어책을 하나 사주며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라 하였다며 엄마가 일을 키웠다며 짜증을 내는 것을 경험한 일이 있다.마침 친구 인척이 교장선생님임을 알게되어 잘 마무리는 하였으나...과연 스승의 태도가 이럴 수 있는가 생각된 적이 있다.
학교교육 그 자체도  암기식 제목교육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베토벤의 비창을 들어보지도 못한채  4지선다형으로 베토벤하면 비창을 고르는 제목교육을 받으며 올바른 이성을 길러줄 수 있겠는가? 

▶이성을 기르기 위한 자기노력이 있어야.
요즈음 인터넷이 발달하여 뒤 늦게 배운 친구들로 부터 사서삼경이나 혹은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단편적 글을 짜집기하여 옮겨주는 일이 많이 있다.대부분 젊은시절에 이미 거친 내용들을 읽어보라고 새삼스럽게 보내니,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하나 , 이제라도 책을 접하는 것이 아름답다 여겨져 소리 없이 지우고 있다.
작년말경 어느 결혼식에서 가까운 옛 동료가 옆에 앉게되어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손에 책이 보이길래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무었이냐 물었더니 최근에 타계하신 스님책(무소유?)을 읽고 , 책속에서 스님이 추천한 Henry David Thoreau가 쓴 Walden이란다.스님이 Thoreau의 책을 읽고 공감하며 Walden Pond도 답사한 모양이다.
올바른 이성은 이와 같이 동서양의 선현들이 사색하며 쓴 글과 다방면의 전문적인 책을 많이 읽고 묵상(사색)하며 간접체험함으로 길러지는 것이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시대적 필요조건이 된  우리의(특히 정치인,경제관료의) 자기반성

현대사회는 전문가사회라 칭한다.직업의 종류도 다양하여졌다.
국민의 선거에 의하여 뽑히는 정치인은 국민의 판단에 따라 그 자질이 결정되니 론외로하고 관료들은 정책입안을 하는데 올바른 판단을 하여야  나라가 부작용을 줄이고 발전할 수 있다.
올바른 판단을 하였다 하여도 잘 못된 정치에 영합하여 정책입안을 한다면 올바른 판단이라 하겠는가? 잘 못된 결정임을 알고도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영합하였다면 더더욱 잘 못된 판단이다. 
흔히들 1997`~1998년 환란사태를 김영삼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물론 정권을 맡았으니 그리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허나 나의 의견으로는 노태우정권 이전부터 눈에 보이게 태동하고 있었으며 일차적 책임은 정치 사회의 총체적 인식부족 이었으며, 이차적 책임은 금융의 관리시스템을 망가트리며 정치에 영합한 경제정책 입안자인 경제관련 관료들이다. 나의 눈에는 그들의 진지한 자기반성이 부족하게 보인다. 그들의 잘 못으로 시중은행에 투자하였던 많은 국민의 돈을 감자(減資)라는 명목 으로 휴지로 날리고 하루 아침에 수많은 기업의 도산으로 실업자를 양산하고서도 반성은 고사하고 잘 못을 인식조차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저축은행의 PF대출 부실을 은근슬적 은행에 떠넘기려 한다. 과연 저축은행의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수립하였는지,업무감독을 제대로 하였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금융정책을 입안하는 경제관료들이 금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단자회사들의 라비활동에 현혹되어 감싸고 편을 들어서,,금융권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장기 시설대출의 가이드라인(장기자금 조달비율에 맞는 장기 시설자금대출 한도 관리)을 허물어 버리는 우를 범하여 (一例로)기아자동차가 소하리 공장을 지으며 단자사에서 4조원이 넘는 1년 만기의 단기대출을 시설자금으로 조달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가 초래되었으며,환리스크도 관리 못하는 리스회사들이 무차별적으로 단기성 외화자금을 조달하여 산업계에 공급하는 우를 범한 것을 반성은 고사하고 인지는 하고 있는가?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은 상호 보완관계이며 상호 독립적이어야 하는데 금융감독위원회의 인력구성은 금융분야에서 잔뼈가 굵고 바른 자세를 겸비한 금융전문가가 포진되어 있는가? 아직도 바른 자세의 전문가보다 소위 마당발이라는 라비리스트(관료들의 낙하산인사)가 도처에 활개를 달고 있지는 않은가? 관치금융 특히  정치권과 관료의 낙하산인사 및 인사의 간섭으로 인하여, 조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것인데 , 저축은행의 PF대출 문제도  환란이전 80년대 금융감독권을 갖고 논쟁하던 때에 제기된 여러 문제점을 제대로 대비하였는지 등등의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중은행도 다루기 힘든 Project Finacing(P.F.대출)을 상호금융에 맡길 수 있는가?  사채(私債)업에서 상호금융으로 상호금융에서 저축은행으로 날개를 달아주며 정책 입안을
잘 못하고,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관료집단을 누가 문책할 것인가? 정치권이, 관료가 대통령을 바로 보필하지 않으니, 아니 대통령이 그들을 발탁하여 세우니,
암울하게 느껴짐은 나의 과민한 기우 인가? 
현대사회에서의 올바른 판단은 분야별 전문가 집단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경험을 필히 참고하여야 가능하다 생각된다. 우리 모두가 바로 알고, 바른 길로 가는 신념이 필요한 때 이며, 각 분야의 지도자는 사람을 잘 선택하여 쓸 줄 아는 슬기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양심이 바로서는 도덕적 재무장이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 요인중의 하나가 우리의 도덕적(道德的) 관념(觀念)의 저하와,우리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관료우선의 생각이다. 자기는 아니라 하는데 살펴보면 은연중 관료우선적 생각이  자리함을 발견할 수 있다.수백년을 이어진 농경사회에서 대대로 내려온 인식이니 쉽사리  지우기는 힘든 모양이다. 말만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오고 공무원은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며 실상은 정 반대이다. 
공무원(관료)의 부패와 눈치보기는 정치의 후진성과 국민의 후진성 (특히 자기만을 위한 편법 혹은 탈법을 용인하는 이기심)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우리 모두의 도덕적 재무장과 관료우선주의 생각의 타파라는 생각이 든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임 대통령의 "거짓말과 약속 불이행" 이라는 유명세를 탄 말이 생각난다. 미국의 전 대통령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도청을 하여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도청을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여서 물러난 것이다. 미국사회의 의(義)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국가의 지도자가 거짓말을 하게되면 신뢰를 잃게되고 국가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대통령의 거짓말을 혹은 말 뒤집기를 식은 죽 먹기로 하여도 국민들이 그럴수 있지 하며 넘기고, 오히려 덮으려한다. 
선(善)은 양선(良善)과 위선(僞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거짓말은 위선을 태동"하기 때문에 나쁜 것이며, 성경에서도 악인(惡人)의 길임을 깨우쳐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도덕적 관념을 함양하고 선출직 공복을 뽑을 때 국가관과 도덕적 행실이 바로선 인물을 우선하여 뽑을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머리속에서 내가 은연중 관료우선적 인식을 갖고 있는지 반성하여 볼 때이다.

▶참고로 Henry David Thoreau를 간단히 소개함.
미국 동북부 Massachusetts주 Boston에서 2번도로를 따라 한시간정도 서쪽으로 나가면 Concord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이 곳이 Thoreau(1817-1862)가 태어난 고향마을이다.Thoreau는 하바드대학 출신으로 가족이 노예제도를 반대하다 잠시 투옥된 경험이 있고, 졸업후 교사가 되었다가 곧바로 사직하고 연필공장운영,측량사, 목공등 다재 다능하였던 저술가,  자연주의 사상가다.
Walden Pond에 가면 Thoreau가 머물었던 자리에 Walden의 서문중에서 발췌한 팻말글이 있음.


(초역)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마음먹은 대로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인생의 핵심적인 사실들만 마주하여보고 싶었고, 삶이 가르치려는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였으며, 내가 죽게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Thoreau 는 Concord 고향마을 인근의  Walden Pond옆 숲에 움막을 짓고, 숲속에서 2년여 사색을 하며 생활하고 나서 Walden : Life in the Woods를 출간하였으며,노예제도 및 인두세를 반대하다 투옥된 경험을 바탕하여 Civil Disobedience를 출판하는 등 여러편의 사색의 글을 남겼고,후일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가 Gandi,미국의 Martin Luther King Jr.목사등이 영향을 받음.

☆Thoreau의 글 중에 몇가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사회의 통념과 관습보다 우주의 진실,진리에 관심을 갖자. 
그대의 일을 두 세개로 압축하라. 백가지 천가지 일에 얽매이지 말라.
단순하여지면 우주의 법칙이 더욱 명료하여진다.
그 때의 고독은 고독이 아니며,가난은 가난이 아니며 삶이 명쾌하여진다.